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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글쓰기

시인 김춘수는 양자역학의 선구자

by 독거성자 20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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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춘수는 양자역학의 선구자

20세기가 고전역학의 전성기였다면 21세기는 양자역학의 시대다.

20세기 전반까지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역학이 지배했지만

( 나한테 올드턴은 누구냐고 묻지마 )

20세기 후반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고전역학에 일대 충격을 가했다.

( 고전역학 ?  거시우주에서는 안통하지롱 ~)

그래서 탄생한 것이 닐스보어가 대표하는 양자역학이다.

( 닐스의 모험의 그 닐스 아니야 )

말하자면 뉴턴-아인슈타인-닐스보어(와 동지들)로 이어지는 물리학의 거대한

흐름이 있는데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자들과 맹렬하게 싸우고 비판했지만

정작 본인이 양자역학의 뿌리를 이룬 사람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서양 백인들의 전유물인 양자역학.

그런데 난데없이 한국인 시인 김춘수가 왠 양자역학이냐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 앞 구절이다.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물리학계의 레전드 리차드 파인만

( 니들이 양자역학을 알어 ?)

이 주장했는데 아주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양자역학의 핵심은 이렇다.

관찰되기 전과 관찰할 때가 다르다.

이것이 핵심이다.

이걸 다른말로 하자면 관찰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눈으로 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사물에 빛을 때려야 한다.

어떤 사물을 관찰하려면 그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수가 없고

빛을 가해야만 한다.

여기서 빛에서 광자가 나오는데 이게 전자와 부딫쳐서 뭐 어쩄다나... 아무튼 그렇다.

바로 양자역학의 핵심명제를 시인 김춘수의 꽃은 아주 문학적으로 상징적으로 잘 표한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리주기 전에는 - 내가 관찰하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알수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 내가 빛을 때려 관찰했을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그전과는 다르게 나에게 관찰되었다.

어떤가? 아주 정확하게 양자역학의 속성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 양자역학 ?  내가 ?)

오오오~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동영상 강연을 듣다가

문득 김춘수 시인의 꽃이 떠올랐다.

양자역학을 김춘수 시인이 알고서 저 시를 썼을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순수한 인간의 마음이 쓴 시가 고도로 정밀한 물리학의 정점과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렇게 만나기도 한다.

그러니 시인 김춘수는 양자역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진담이냐고?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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