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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글쓰기

인간의 실존은 기억에 있다

by 독거성자 2020.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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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실존은 기억에 있다

자아, ''란 무엇일까?

이처럼 어려운 질문도 세상에 없을 것이며 또한 이처럼 쉬운 질문도 없을 것이다.

쉬운 사람입장에서 ''란 그냥 여기 말하고 숨쉬고 밥먹고 똥싸고 희노애락을 느끼는 감정과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의 내가 있기 때문에 ''는 그냥 ''인 것이다.

즉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육체적 존재로서의 자신이 자아의 실존적 증거가 된다.

이 쉬운 직관적 증거를 인정하지 못하고 죽음이라는 우주만큼 거대한 크기의 절벽 앞에서 '영혼'을 찾는 사람들은 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있어 수천년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어렵게 자아를 찾는 사람들은 육체가 없어져도 남이있는 영혼이라는 존재가 자아의 실체라고 믿는다. 종교인들에게 이것은 진리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고 오로지 살아있는 자들이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거나 죽음 너머 존재하는 영혼에 대해 생상하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과학과 이성을 신봉하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육체와 분리되어도 존재하는 영혼이란 증명된 바 없다.

뒤집어말하자면 육체적 존재로서의 자아만이 확실하게 증명되는 ''인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로서 증명되는 자아란 결국 두뇌와 신경세포의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의식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 자아가 기거하는 두뇌가 자아가 머무는 집이 되는 것이다.

두뇌가 컴퓨터라면 자아는 그 컴퓨터가 작동하면서 종료전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다. 즉 두뇌가 컴퓨터 자아는 윈도우 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자아를 컴퓨터 윈도우쯤으로 대충 비유하는것으로는 좀 부족하다.

과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갓난아기 , 유년시절의 나는 그럼 현재의 나와 같을까?

인체는 세포로 이루어져있다.

세포는 계속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즉 인간의 세포의 생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존재다. 그러한 과정에서 두뇌에 남아있는 기억도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져간다.

과거 유년시절의 나와 어른이 된 나의 신체세포는 모두 다르게 바뀌어 있다.

육체로서의 나는 그래서 참다운 나라고 볼 수 없다.

두뇌의 의식, 그 의식이 기억하는 나, 그것이 실존하는 ''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이란 기억의 과정속에 사는 존재라고 난 정의하고 싶다.

기억이 없으면 엄밀히 말해 그것은 참다운 자의식이 아니다.

아마도 그래서 인체의학 특이점이 올 시대의 최대 난제는 늙어가며 기억이 사라지는 두뇌와 의식활동이 아닐까 싶다.

다른 육체부위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과연 두뇌마저 불로장생시킬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설령 몸이 영원히 20대를 유지한다 해도 두뇌가 기억을 잃고 치매에 빠진다면

그 또한 불행한 인생이 될 것이다.

만화 원피스의 그 유명한 대사처럼 사람이 죽는 것은 죽어서가 아니라 잊혀질 때 죽는다고 했는데

적어도 자기 자신은 기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를 기억해주는 것은 사실상 나 자신 밖에 없다.

남들이 기억해주는 나는 나의 극히 찰나의 모습에 불과하다.

나 자신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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