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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글쓰기

노예의 평화 vs 자유인의 전쟁

by 독거성자 202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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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기억한다

후성유전학을 들어보았는가?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말인데, 쉽게 말하자면 유전자가 기억을 한다는 뜻이다.

유전자가 기억을 한다?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예전에는 DNA는 염기서열일 뿐이므로 기억을 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다윈의 진화론에 사장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도 말하자면 이 후성유전학의 원조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몸이 그에 맞게 발달,진화한다는 용불용설이 폐기되고 원래부터 다양한 특징을 가진 생물 종 중에 자연선택에 의하여 도태되고 살아남은 생물 종이 유전될 뿐이라는 적자생존론이 지금까지는 주류였다.

그러나 후성유전학은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각광받고 있으며 실제 쥐실험으로 부모쥐의 경험이 자손쥐에게 유전적으로 전달됐음을 입증했다. 특정 냄새를 맡게 하고 전기 충격을 주면 그에 반응한 수컷쥐의 기억이 유전자에 남아서 후손 쥐가 전기충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냄새만 맡고도 스트레스를 받는 실험이 유전자가 부모의 기억을 자손에게 전달했음을 입증한 것이다. 한마디로 유전자는 조상의 기억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셈이다. DNA 염기서열 자체는 바꾸지 않지만 DNA에 어떠한 변화가 생긴 것은 틀림없다.

 

조선 노예제 500년

조선은 명실상부 노예제 국가였다. 그것도 개국초기부터 멸망때까지 꼬박 500년을 꽉 채워 노예제를 유지했다. 그야말로 야만의 500년 세월이었다. 조선 노비, 즉 조선 노예는 인구의 4할을 차지했으며 거의 대부분 조선 백성들이었다. 다른 나라의 노예들이 전쟁 등으로 외국에서 끌고온 전리품들이었고 노예의 자손은 신분 해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유독 조선만은 전쟁으로 외국의 노예를 끌고온 역사가 아예 없다. 오히려 전쟁으로 자국민을 일본의 노예로 뺴앗긴 경우는 임진왜란 등으로 있었다. 전세계에 이렇게 자국민을 노예로 삼는 노예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우며 그러한 노예제를 500년 동안 유지한 나라는 더더욱 찾을 수 없다. 조선 노비를 외거노비,솔거노비로 나누고 노비에게도 인권이 있었다는 등 헛소리를 떠드는 좌파들이 더러 있는데, 조선왕조 실록에 양반이 자기 소유 노비를 때려서 죽였다는 기록, 가축처럼 사고 파는 매매의 기록들은 명명백백하다. 그러니까 노비다. 노비라는 거 자체가 물건인데 거기에 어떤 말도 안되는 미화를 하려는 모든 주장들은 조선 양반의 시각으로 조선을 미화하려는 역사 왜곡일 뿐이다. 그 잘난 조선 양반은 전체인구의 10%도 안되었다. 구한말 매관매직이 극심했던 때 기준 10%이니 평균적인 조선 양반의 비율은 10%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그런 소수의 양반이 인구의 40%를 넘나드는 노비를 소유하고 남자노비는 온갖 막노동에 내몰고 여자노비는 양반의 몸종 겸 잠자리까지 동침하게 하는 성노예 역할까지 시켰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관기라고 해서 아예 양반은 공식적으로 성접대를 정부기관에 속한 노비인 관기로부터 합당하게 받는 것이 조선 노예제의 실체였다.

 

도대체 이런 야만적인 노예제가 어떻게 500년간 유지될 수 있었는지는 미스테리하다. 분명한 사실은 500년간 한번도 뒤엎어지지 않고 쭉 이런 노예제 상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은 노예들의 기억이 500년간 유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말 국제정치에 까막눈이었던 고종과 그 휘하 양반들이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으면서 조선노예는 비록 강제적이지만 일제에 의해서 신분해방을 이루었고 6.25를 통해서 비로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완전한 자유인의 신분을 얻었다. 그러나 지난 1세기의 격동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 5세기에 걸친 노예의 기억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철저히 노예적이기 때문이다.

 

노예의 평화

조선 노예제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좌파식의 논리대로 그 나름대로 아름다운 질서가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동물 실험으로도 알 수 있다. 코끼리 새끼를 어릴때 부터 쇠말뚝을 채워 놓으면 덩치가 커져도 어렸을 때부터 말뚝에 묶여있던 경험과 기억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힘이 세졌음에도 자기 힘을 알지 못하고 그 말뚝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스스로 포기한다고 한다. 적응과 체념. 이것이 장구한 조선 노예제의 지속 이유라고 본다.

조선은 전국토가 거의 대부분 평지는 적고 산림이 우거져있다. 그래서 대륙국가들처럼 말을 타고 무한정 내달려 새로운 땅을 향해 바람처럼 이동하는 기마민족의 기상을 펼칠 수 없는 꽉막힌 곳이다. 이런 협소한 지리적 여건상 지배자의 압제에서 벗어나 노예가 자기세력을 이루어 해방을 쟁취하기에는 너무나 불리했다. 물론 이런 지형적 이유만으로 노예의 삶을 모두 다 설명 할 수는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자유를 얻지 못한 대신 대체적으로 평화를 지속한 것이 또한 조선 노예의 특징이다. 

우리 속담에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삶이 고되더라도 일단 살아남는게 좋다는 뜻이다.

그런데 서양속담에는 이와 반대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이 있다. 노예로 사느니 자유롭게 죽겠다는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조선 노예들에게는 어떤 이유에선지 서양처럼 적극적으로 나타나질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으되 역사적 진실은 이러한 노예 상태로 500년의 기억이 그대로 후손에게 대물림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인의 전쟁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물러난 뒤 김일성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다. 이승만은 분연히 일어나 자유인의 전쟁을 수행하여 한반도의 반쪽을 지켜냈다. 북진통일까지 하려했으나 미군의 희생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미국 정부의 명령으로 안타깝게도 맥아더 장군이 직위해제를 당함으로써 통일의 꿈은 접을 수 밖에 없었는데 바로 이러한 남북 분단 체제 확립이 반세기가 넘는 훗날에 자유인의 전쟁의지를 막아버리는 비극을 초래했다.

지금도 야만적인 북한 왕정체제에 대해서는 좌우를 떠나서 제정신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성토한다. 최소한 김대중이 집권하기 이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김대중이 집권하면서 '햇볕정책' 이라는 무슨 해와 구름의 우화 같은 정책을 들고 나와서 북한에게 햇볕을 보내주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망상적인, 또는 기만적인 정책을 좌파정권이 지난 20여년간 지속시킨 결과, 지금은 백정 3대 김정은이 불쌍한 소년 가장이라느니 하는 개소리를 좌파기득권 정당의 유력인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 세상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단 1번도 6.25 대남 침략에 대해 사죄한 적이 없으며 털끝만큼도 사과의 감정 표현 한마디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 좌파 대통령들은 이러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키고도 일말의 반성조차 없으며 대남적화를 공식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 같은 개소리를 주야장천 떠들어왔다. 그 결과 김일성의 손자, 3대 백정 김정은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응답해왔다.

 

이쯤되면 햇볕정책이 거대한 죄악의 업보라는 사실을 인정할만 한데도 여전히 '민주'를 참칭하는 집권당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의 악랄한 만행에 대해 비판하면 '그럼 지금 전쟁하자는 거냐?" 라며 북한 비판과 대한민국 안보 강화에 대한 요구를 윽박지른다. '전쟁은 절대 안된다' 라는 명제는 타당한가? 그렇게 전쟁을 절대 죄악시하면서 전쟁의지 자체를 전쟁의도로 윽박질러서 포기하니까 북한은 더욱더 대남적화 공작을 포기하지 않고 대남위협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생각자체가 주사파들이 장악한 민주를 참칭하는 정당에게는 없다.

 

이들 친북성향의 정당인들은 자유인의 전쟁의지 그 자체를 포기하는 인간들이다. 자유를 위해,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그 주적인 북한 공산주의 악마정권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가 왔을때도 미군이 하는 말만 듣고 한국인의 피해가 있다는 공포를 선전하면서 미국의 대북선제타격을 뜯어말린게 바로 김대중 이전에 김영삼 대통령이었다. 과연 전쟁나면 수십만명의 서울 사람들이 죽었을까? 정녕 그랬다면 전쟁을 반대하는게 맞다. 그런데 과연 정말 그런지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정확하게 전쟁시나리오를 분석해 본적은 있나? 나는 이 질문을 위정자들에게 꼭 하고 싶다. 방공호라는 게 있다. 방공호는 전쟁시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피난처다. 이 방공호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유사시 이용하는지 내 기억으론 단 한번도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교육도 훈련도 시킨 적이 없다. 이스라엘 처럼 불시에 전쟁이 일어나도 철저하게 보복과 응징을 하는 자유인의 전쟁의지를 한국에서는 불씨조차 찾을 길이 없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의 결정적 차이다. 

 

미국은 항상 남북 분단체제의 고혈을 짜먹으면서 국제정치를 조련해왔다. 이러한 분단갈등체제는 미국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도 하고 골칫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미국이 김영삼 정권 때 북한 타격의 의지를 불태운 바 있다. 만약 대한민국의 항국적 자유를 획득하겠다는 의지가 한국인들에게 있었다면 대통령이나 국민들이나 다같이 허심탄회하게 어떻게 인명손실없이 북한체제를 정리할 것인가, 북한정권을 어떻게 끝장내고 남북통일을 통해 영원한 자유를 얻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내 기억엔 단 한번도 국민이나 정부나 북한 공산체제 정리를 위한 전쟁을 고민한 적이 없다. 그냥 북한이 도발하면 유감 성명이나 발표하고 미국만 바라보는게 끝이었다. 이런데도 미국탓만 할 수 있을까? 미국은 분명히 대한민국에게 북한 공산왕조 정권을 끝장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것을 걷어찬 것은 김영상, 김대중,노무현, 등 햇볕정책 옹호론자들이었다. 심지어 전쟁없이 아주 평화적으로 북한이 스스로 경제위기로 고사할 지경에 이르렀을때 그대로 그냥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놔두면 자동으로 북한체제가 붕괴되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 굶어죽은 북한에 무혈입성할 수 있는 기회가 김대중 때 주어졌다. 그런데 김대중은 햇볕정책이라는 우화로 또 국민세금을 퍼다가 김정일의 주둥아리에 꽂아주어서 망해가던 북한 정권이 살아나서 계속 지랄하게 오히려 도와주었다. 그 결과 북한은 김대중이 보낸 달러, 노무현이 보낸 달러로 문재인 집권기에 핵실험으로 화답했다. 그야말로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불쌍하게 굶어죽어가는 북한 인민들 살려주라도 돈을 보냈더니 핵실험과 미사일 쏘기를 하는게 북한이다. 이런데도 아직도 햇볕정책을 펼쳤던 주사파세력은 자성의 목소리 한번 나온 적이 없다. 철면피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자기세뇌가 단단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들은 마치 자신을 학대하고 부려먹는 주인양반에게 굽신굽신대며 스스로 자유를 찾아 도망가려는 의지 자체를 포기한 조선 노비들과도 같다. 충분히 대한민국의 군사력과 국력이면, 그리고 능히 북한체제를 뒤엎어버리기에 충분한 능력을 갖춘 미국의 협력이 있으니 북한 악마체제를 없애고 자유의 평화를 위한 전쟁을 벌일 수 있음에도 언제나 이들 노비의 평화세력은 '전쟁나면 다 죽는다'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해묵은 반전의 위선만 선전선동하고 있다. 

 

전쟁이 무조건 나쁜가? 아무리 굴욕적이고 불안하고 불의해도 노예의 평화가 옳은가? 우리는 수많은 미디어 메시지를 통해서 전쟁은 무조건 나쁘다는 학습을 매일 하고 있다. 물론 전쟁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일찌기 손자병법에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 했으니 싸워서 이기는 것은 최선이 아닌 것이 맞다. 그러나 아무리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대북협상을 했어도 북한은 조금도 대남적화통일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있고 자신들의 악마체제를 포기할 생각도 전혀 하질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는 친중파이기도 한 주사파정권은 여러가지 국제정치의 핑계거리를 들먹이며 전쟁을 피하려고만 한 결과 우리는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가는 불안한 안보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언제까지 노예의 평화에 만족해야 할까? 왜 인명피해없이 자유인의 전쟁을 치룰 의지조차 포기하고 살아가는가? 대한민국의 군사력은 그 어느때보다 막강하다. 아니 사실은 박정희 대통령 임기 말에 이미 한국은 북한의 국력을 넘어섰고 전두환 정권 때부터 한국 군사력은 북한을 앞지르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넘사벽의 차이다. 다만 결정적으로 북한은 핵무기 보유국이라는 점에서 비대칭 군사력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미군의 협력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미국이 미군으로 협력하겠다는데도 그걸 걷어차버린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었다. 노예의 평화, 제발 이제는 끝내자. 우리는 자유인의 전쟁을 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만 한다. 

 

이순신 장군 왈: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리라. 대한민국은 이순신 장군의 말씀을 엄중히 마음에 새겨야 한다. 노예의 생이 아닌 자유인의 죽음을 마음에 새길때 비로소 자유인의 삶이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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