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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지식

이야기 고사성어 78 타산지석/타인한수/타초경사/태산북두

by 독거성자 2021.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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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    山    之    石

다를 타    뫼 산   어조사 지     돌 석

타산지석: 다른 산의 돌: 타인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을 수양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경 소아편에 실린 학명鶴鳴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다른 산의 돌他山之石이라도 자기의 옥을 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뜻이니, 쓸모 없는 것이라도 쓰기에 따라 유용한 것이 될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학이 높은 언덕에서 우니 소리가 들까지 들리누나

  물고기는 깊은 못에 잠겼다가  때로는 물가에 나와 노는 구나

  즐거워라 저 동산에  심어 놓은 박달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에는 낙엽이 떨어져 있네   

  다른 산의 돌他山之石도  숫돌로 삼을 수 있다네   

  학이 높은 언덕에서 우니 그 소리 하늘까지 울려 퍼지네 

  물고기는 물가에 나와 노닐다가 때로는 깊은 못에 잠기는구나

  즐거운 저 동산에 심어 놓은 박달나무가 있는데 그 아래에는 닥나무가 있네

  다른 산의 돌他山之石도  가히 옥을 다듬을 수 있다네."

  - 시경  소아편 -

 

他    人    鼾    睡

남 타   사람 인     코골 한    잠잘 수

타인한수: 남이 코골며 자는 소리: 다른 세력 옆에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송나라의 태조 조광윤이 황제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까지 양쯔강 남쪽에는 아직 이욱이라는 사람이 금릉(난징)을 도읍으로 하나의 독립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천하통일을 꿈꾸는 조광윤에게는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침략의 위협을 느낀 이욱은 서현이라는 사람을 송 태조에게 파견하여 송나라 속국으로서 臣從할 것을 조건으로 "강남은 죄가 없습니다. 宋을 해치는 아무런 나쁜 일도 한 일이 없으니 제발 토벌군을 보내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그런데 사신으로 간 서현은 매우 집요한 성격의 사나이로서 태조의 명확한 언질을 받지 못하자 어전에서 몇 번이고 '강남무죄江南無罪'를 떠들어 댔던 것이다. 처음에는 온화하게 대하던 송 태조도 본성을 드러내어 화를 냈다.

 "江南無罪는 이제 알았노라, 다만 천하는 한 집안이어야 한다. 그리고 같은 침상에 누운 몇 사함의 코고는 소리他人鼾睡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니라." 라고 호통쳤다. 이리하여 금릉은 오래지 않아 송나라의 대군에 짓밟혀 이욱의 왕조도 멸망하고 말았다.

  - 송사 -

 

打    草    驚    蛇

칠 타    풀 초      놀랄 경     뱀 사

타초경사: 풀을 쳐 뱀이 놀라다: 무심코 한 행동이 의외의 결과를 초래한다

 

당나라 때 당도 현령으로 왕노라는 사람이 있었다. 

탐관오리인 그는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이고 갖가지 부정부패를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은 왕노의 부하들이 저지른 비리들을 모아 고발장을 만들어 올렸다.

고발장을 받아 든 왕노는 내용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백성들이 자신의 부하들의 비리를 고발한 것은 곧 자신의 비리를 우회적으로 고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놀란 왕노는 고발장에 '汝雖打草  吾已驚蛇' 라는 여덟 글자를 적었다. 이 말은 '너희들은 비록 풀밭을 건드렸을 뿐이지만, 나는 풀 속에 숨어 있는 뱀처럼 놀랐다' 는 뜻이었다.

병법 삼십육계 등에서는 작전을 일부러 사전에 누설시켜 상대가 경계심을 갖게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 유양잡조 -

 

泰    山    北    斗

클 태   뫼 산       북녘 북     별이름 두

태산북두: 태산과 북두칠성: 세상 사람들로부터 우러러 받듦을 받거나 존경받는 사람

 

唐書 한유전에 실린 한유의 공적을 칭송한 글에서 유래한 말이다.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의 문장으로써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학설이 천하에 크게 행해졌으므로 학자들은 그를 '태산과 북두泰山北斗'와 같이 우러러 보았다."

한유는 당나라 사대 시인의 한 사람이자 당송팔대가 가운데서도 굴지의 명문장가로 손꼽혔다. 순탄하지 못했던 벼슬살이와는 달리 그는 학문과 사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는데, 사륙변려체 문장의 개혁과, 자유로운 문어체 문장인

古文의 부활 등이 대표적이다. 또 유교 사상을 존중해 송대 이후 道學의 선구자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후대 학자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줄여서 태두泰斗라고도 한다.

 - 당서 한유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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