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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지식

이야기 고사성어 30 문경지치/문일지십/문전성시/문전작라

by 독거성자 202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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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景 之 治

글월 문   경치 경    어조사 지   다스릴 치

문경지치: 문제와 경제의 정치: 중국의 번영시대


기원전 159년 고조가 세상을 뜬 후 혜제가 즉위하였다. 그러나 이때 정권은 사실상

한 고조 유방의 황후 여후呂后가 장악하고 있었다. 여후는 친정 식구들을 중용하여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여산呂産을 상국(국무총리)에, 여록呂祿을 상장군(참모총장)에 임명하고

또한 왕에 친정 식구를 세 명이나 두게된다. 조정 대신들과 유씨 자제들의 시기와 불안으로

이른바 제여지란諸呂之亂이 발발하게 된다.

여씨 집안의 반란이 평정되고, 한조 제3대 황제 문제文帝가 등극하게 되는데 문제는 즉위 후

아들 경제(기원전 156년 ~ 기원전 143년)와 함께 39년간(기원전 179~ 141년) 재위하는 동안

"여민휴식"정책방침을 계속 집행하여 형법을 간소화하고 세금을 경감시키고 문신들을 중용하고

덕망있는 사람들을 관리에 임명하여 한나라의 경제가 크게 발전하게 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문경의 통치文景之治"라 한다.

태평성세를 황제연호로 표현한 비슷한 성어로 

당태종 때의 정관지치貞觀之治, 당현종 때의 개원지치開元之治가 있다.

 - 사기 -


聞 一 知 十

들을 문   한 일        알 지      열 십

문일지십: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


공자는 3천 명의 제자를 두었다고 전해지는데, 그중에서도 안회는 가난하지만 총명하고 영리해서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그는 공자가 仁인이라는 말을 내린 유일한 제자였다.

자공의 재능 역시 공자로부터 제사에 쓰는 보배로운 그릇과 같다는 칭찬을 들을만큼 뛰어난 편이었으나,

스스로의 재주에 대한 자만심이 강해서 때로는 지나침음 모자람만 못하다過猶不及는 훈계를 듣기도 했다.

하루는 공자가 자공을 불러 물었다.

"너는 안회와 비교해서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느냐?"

자부심 강한 자공의 속을 떠보고자 한 것이다. 자공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어찌 안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듣고도 열을 알 정도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자공의 솔직 담백한 대답을 들은 공자는 크게 만족해했다고 한다.

 - 논어 공야장편 -


門 前 成 市

문 문      앞 전       이룰 성     저자 시

문전성시: 방문객으로 문 앞에 저자를 이루다시피 한다: 권세가 있어 찾아오는 사람이 많음


전한 말 11대 황제인 애제는 동현이라는 미소년과 동성연애에 빠진 채 국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대신 외척들이 실권을 장악해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상서복야로 있던 정숭은 외척들의 횡포와 부패에 대해

여러 차례 황제에게 간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때 상서령으로 있던 조창은 전형적인 아첨배로,

정숭을 시기해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애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최근 정승의 집 문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습니다門前成市.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애제는 즉시 정숭을 불러 꾸짖었다. 이에 대해 정숭은 

"폐하, 신의 집 문 앞이 저자와 같을지라도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 다시 조사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애제는 황제의 말에 대꾸했다는 죄명으로 그를 감옥에 가두고

평민으로 강등시켰다. 정숭은 그 후 감옥에서 죽었다.

 - 한서 손보전 , 정숭전


門 前 雀 羅

문 문      앞 전      참새 작      그물 라

문전작라: 문 앞에 새그물을 치다: 권세를 잃거나 빈천해지면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짐


전한 무제 때 어진 신하 급암과 정당시는 구경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들은 찾아오는 손님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항상 겸손한 태도에 취해서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이 없게 하고, 봉록도 손님들과 함께 나누고는 했다.

이때문에 이들 집 문 앞은 항상 방문객으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급암은 솔직한 충언 때문에, 정당시는 자신을 추천해 준 이의 죄에 연루되어 각각 파면되었는데,

이들이 관직에서 물러나 가난하게 지내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마천은 이야기 끝에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도 세력이 있으면 손님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모두 떨어져 나간다.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적곡의 경우도 그가 정위가 되자 손님들이 문을 가득 메웠으나,

벼슬에서 물러나자 문 밖에 참새그물을 쳐도 좋을 정도로門前雀羅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고 기록했다. 문전성시門前成市의 정반대말이다.

 - 사기 급정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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