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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지식

이야기 고사성어 14 금란지교/금상첨화/금성탕지/금의야행

by 독거성자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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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 蘭 之 交

쇠 금      난초 란     어조사 지   사귈 교

금란지교: 쇠처럼 단단하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우정


역경 계사전에 실린 공자의 말씀에서 유래했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을 하나로 해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여기에서 나온 말로, 쇠처럼 굳고 난초처럼 향기로운 친구 사이의 사귐을 가리켜

금란지교라 했다. 이후 금란, 금란계, 금란지계 등의 형태로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설신어 현원편에는 "산도와 혜강, 완적이 얼굴을 한번 대하고는

금란과 같은 사귐을 가졌다" 고 되어 있다.

또 송나라의 재상 범질의 시 금랑면봉에서도 "모든 사람과 다시 서로 사귄다면

금란지계와 같이 맺으리" 처럼 쓰이고 있다.

- 역경 계사전 -


錦 上 添 花

비단 금   위 상     더할 첨      꽃 화

금상첨화: 비단 위에 꽃을 더하다: 좋은 일에 또 좋은 일


북송의 정치가이자 시인인 왕안석이 지은 즉사라는 시에서 유래한 말이다.

"강물은 남원으로 흘러 서쪽 언덕으로 기우는데 

바람에 영롱한 이슬이 아름답구나

문앞 버드나무는 옛사람 도잠의 집이요

우물가 오동나무는 전날의 총지의 집이라

즐거운 모임에서 잔 속의 술을 비우려 하는데

아름다운 노래가 비단 위에 꽃을 더하네(錦上添花)

무릉도원에서 대접받으니

천원의 붉은 노을은 아직도 많구나"

여기에서 비단은 술자리와 그 일대의 경치, 그리고 꽃은 아름다운 노래를 가리킨다.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뜻에서 좋은 일 위에 또 좋은 일이 더해짐을 비유하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 왕안석의 즉사 -


金 城 湯 池

쇠 금     재 성      끓일 탕     연못 지

금성탕지: 쇠로 만든 성과 끓는 연못: 방비가 매우 견고한 성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진秦의 시황제가 죽자 전국은 다시 혼란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조趙나라 옛 땅을 평정한 무신군은 무력으로 주변의 성들을 평정해 나갔다.

범양의 현령 서공이 전전긍긍하자 모사 괴통이 무신군과 싸우지 않고 후한 대접까지 하면서

항복할 수 있는 계책을 일러 주었다.

서공의 허락을 받은 괴통은 무신군을 찾아가 말했다.

"공이 범양을 친다면 물론 굴복을 시킬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성의 장상들은 성을 더욱 굳게 지키게 되어,

마치 끓어오르는 못에 둘러쌓인 무쇠성(金城湯池)처럼 튼튼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공도 희생을 치러야 할 것이니 차라리 서공을 후하게 대접해 자발적인 항복을 받아내십시오.

그럼 다른 장상들도 모두 싸우지 않고 항복해 올 것입니다."

무신군은 그의 말대로 실행해 30여 성의 항복을 받아냈고, 서공은 화를 입지 않게 한 공으로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다.

-한서 괴통전 -


錦 衣 夜 行

비단 금    옷 의     밤 야       다닐 행

금의야행: 비단옷을 입고 밤에 다닌다: 아무런 보람도 없는 일


홍문에서 만남 때 유방을 죽일 기회를 놓친 항우는 며칠 후 진나라 수도 함양으로 진격했다.

그는 아방궁을 비롯해 모든 궁전을 모조리 불지르고 시황제의 무덤까지 파헤쳤다.

금은보화를 마음껏 약탈한 항우는 만족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수하들은 예로부터 패왕의 땅이었던 함양을 버리고 보잘것 없는 팽성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은

당치 않으며, 관중 일대를 근거지로 삼아야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을것이라며 만류했다.

그러자 화가 난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저잣거리에 '큰 재산과 높은 지위를 얻고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마치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으니 알아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는 노래가 떠돌고 있던데, 이야말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 금의야행은 뒤에 나올 금의환향과 완전히 반대말이다. 

부를 얻었다면 마땅히 아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해야

제맛인데 낯선곳에서는 알아주는 이가 없으니 소용없다는 인지상정을 이야기 하고 있다.

- 사기 항우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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