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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지식

이야기 고사성어 12 구우일모/구화지문/국사무쌍/군맹무상

by 독거성자 2020.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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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 牛 一 毛

아홉 구    소 우      한 일         털 모

구우일모: 많은 것 가운데 극히 미미한 하나


한나라 이릉 장군이 흉노와의 전쟁에서 패하자 조정에서는 이릉 일가를 처형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이 때 이릉을 두둔한 사마천은 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궁형에 처해졌다.

당시 궁형은 죽는 것 보다도 못한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사마천은 치욕을 감수하고

살아남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역대로 사관을 맡아 왔던 가문의 명예를 위해 그에게는

최초의 통사를 남기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번씩 뒤틀리는 듯한 괴로움을 참으며 그는 저술에 매진했고,

불후의 저작 사기는 이렇게 세상의 빛을 보았다.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글 가운데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가령 제가 벌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홉 마리 소 가운데 털 하나 빠진 것이나 마찬가지일테니

제 존재가 개미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한서, 사마천전, 보임안서 -


口 禍 之 門

입 구    재앙 화     어조사 지    문 문

구화지문: 입은 화를 일으키는 문: 말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


풍도는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당나라가 망한 뒤의 후당 때에 재상을 지냈다. 

후진, 후한, 후주 등 여러 왕조를 겪으며 열한 명의 왕을 섬겼다.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기에 73세의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경륜을 갖춘 그의 처세관에 

힘입은 바가 크다. 전당서 설시편에서 몸을 안전하게 지키는 처세의 비결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읊고 있다.

"입은 재앙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처신하는 곳마다 몸이 안전하고 편안하다."

구시화문은 이 시에서 비롯된 말로 입을 잘못 놀림으로써 화를 자초하지 말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 풍도의 설시舌詩 -


國 士 無 雙

나라 국   선비 사   없을 무    쌍 쌍

국사무쌍: 나라에서 둘도 없는 뛰어난 선비


진나라가 멸망하고 초 패왕 항우와 한왕 유방이 패권을 다투며 대치하고 있을 때였다.

한나라 승상인 소하는 군량을 관리하던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유방에게 여러번 추천했지만

유방은 그를 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한신이 도망갔다는 보고를 받은 소하는

황급히 말을 타고 뒤를 쫓아갔다. 소하까지 도망친 것으로 오해한 유방의 노여움은 컸다.

그런데 이틀 후 소하는 한신을 데리고 돌아왔다. 유방은 일부러 노한 얼굴을 하고 도망친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소하는 "도망친 것이 아니고 도망친 사람을 잡으러 갔다 왔습니다" 하며 한신을 가리켰다.

의아한 유방은 한신을 쫓아가 데려온 이유를 물었다. 소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도망친 사람들은 얼마든지 다시 얻을 수 있지만 한신은 나라 안에 다시 없을 인물國士無雙

입니다. 천하를 손에 넣는 것이 소망이시라면 그를 반드시 활용하셔야만 합니다."

 - 사기 회음후 열전 -


群 盲 撫 象

무리 군   소경 맹  어루만질 무  코끼리 상

군맹무상: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지다:사물을 일부만 파악하여 그릇되다


옛날 인도에 경면왕이라는 임금이 있었다. 어느날 왕은 맹인들을 궁중으로 불러모았다.

그리고 대신을 시켜 코끼리를 끌고와서 맹인들에게 만져 보라고 했다. 왕이 맹인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겠느냐?" 그러자 맹인들은 대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모두가 달랐다. 상아를 만져 본 사람은 무와 같다고 했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쌀을 고르는 키, 머리를 만져본 사람은 돌, 코를 만져본 사람은 절구공이, 꼬리를 만져 본 사람은

새끼줄 같다고 대답했다. 맹인들이 만져 본 부분이 다 달랐으므로 나름대로 일리 있는 대답이라 하더라도

코끼리 전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각자가 말하고 있는 것을 떠나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에 나온 코끼리는 부처를, 맹인들은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즉 모든 중생들은 부처를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에는 일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주로 쓰이고 있다.

- 북본열반경 사자후보살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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