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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 글쓰기

인생은 원래 외로운 것

by 독거성자 2020.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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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공수거 라는 말이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게 인생이란 말이다.

하긴 태어날때 빈손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갈때도 빈손인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진리를 막상 현실에서 체감하기란 사실 그다지 간단치는 않다.

왜냐하면 인생은 가만히 앉아서 머리속으로만 그 원리와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게 아니기 떄문이다.

형식논리적으로야 공수래공수거를 누가 모르랴만 그것을 리얼하게 온몸으로 느끼는 때가 언제냐 하면 

그건 내 생각에 나이들고 외로움을 느끼면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전제가 있다. 가난하고 외로울수록 공수래공수거를 실감하는 나이는 빠를 것이요,

부유하고 사교관계가 두터울수록 공수래공수거는 하나마나한 소리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인생을 즐기기 바빠

체감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인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살아움직이는 생물이다.

인간이 생물인데 인생이 생물이라니 중언부언 아니냐 생각할 것이다. 내 말인즉 인생은 결코 반복되지 않는 어떠한 생명체다운 유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인생의 시간들이 모두가 같은 지평선으로 공평하게 분배된 것이 아니라 각 시기마다 어떠한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보내는 서로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은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하고 말하는 동물 수준이다. 본능 외에는 딱히 인간다운 독창성은 별로 없고

세상을 관찰하고 모방하기 급급한 시절이라 인생을 관조할 틈이 없다.

 

사춘기-청소년기 시절은 한마디로 감성이 지배하는 시기다. 속칭 중2병을 앓는 이 시기를 순조롭게 넘겨야만 성인이 되어서 훌륭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많은 평범 이하의 사람들 중에 사춘기를 순조롭게 보내지 않고 삐뚤빼뚤 보내다가 어른이 되어서도 정신못차리고 사는 경우가 많다. 

 

20대 중후반을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세상속으로 자의든 타의든 진출하는 시기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세상에는 일할 기회와 놀기회가 지천에 널렸다고 착각하기 쉽다. 물론 실제로도 대부분 평범 이하의 사람들은 이 시기에 가장 놀기회와 일할 기회가 많기는 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이 시기에 제대로 놀고 제대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둘다 별로인 경우가 많다. 그 기준은 평범 이하다. 평범 이하의 사람들이 모두가 잘 놀고 잘 일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엄연히 이 세상은 경쟁을 통해 성공과 좌절이 순환되는 서열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수직적 경쟁 구도 속에서 자기 자신과 적당히 타협하여 일과 놀이의 줄타기를 하지만 제대로 둘다 쟁취하기란 쉽지 않다. 둘다 놓친다면 평범 미만인 사람들일테고 나도 그에 속한다. 억지로라도 놀려고 지랄발광해보기도 했지만 자기 분수에 안맞게 잘 논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일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게 어,어 하면서 세상의 경쟁에 밀리고 가난이냐 성공이냐 어중간한 생존이냐의 갈림길에서 우왕좌왕 하면서

30대를 보내다보면 어느새 이미 불혹을 넘기게 된다. 그러면서 바로 엇그제까지 교복입고 학교 다니던 사춘기 시절이었던거 같은데 어제까지 또래 여자애들을 품평하며 야한생각을 즐기던 것이 생생한데 갑자기 나이가 먹고 아랫배는 나오고 몸은 뛰면 엉덩이살이 무겁게 느껴지고 머리는 이마가 밀리는 탈모가 진행되고  ... 그렇게 청춘은 일찌감치 사라졌음을 자각하게 된다.

 

내 마음은 여전히 20대인데 나이와 몸은 40대 , 혹은 50대 중년이 되어버린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

누군가는 그래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해서 할일을 하면서 결혼도 해서 아이가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인생일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기 고집대로 살다가 연락해서 만날 이성이 한명도 남아있지 않고 동성 친구들도 모두가 결혼하거나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 인생을 살고 있음에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부모님의 상을 경험해서 멘탈붕괴를 겪고 나면 천천히 진행하는 듯 했던 인생이 갑자기 늙음과 죽음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남들의 부모상을 볼때는 남의 사정이라 실감이 안가지만 본인이 겪을 때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나도 언젠가 죽는다는 죽음의 예습을 한 느낌이었다.

 

마음과 생각은 아직도 20대에 머물러 있지만 주변에는 같이 20대 때 놀던 친구들이 모두 흩어지고 연락이 닿는 사람들도 어느덧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사는걸 볼수 있으며 스스로도 이제 애가 아니어야 한다는 인생의 중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자유롭게 혼자 살아도 인생은 청년 시절과 같을 수가 없음을 깨닫는다. 몸이 무거워지고 마음도 무거워지며 어느 순간 시간이 무섭게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자각한다.  시간의 무서운 속도를 체감하기 시작하면 인생이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사실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겪는 필연적 인생의 변화다.

 

다만 친구와 자주 어울리고 자기 일에 푹 빠져 즐겁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그런 인생변화의 자각을 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가난하고 외로운 인생들만이 인생변화를 실감할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의 외로운 변화를 실감한들 실감하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건 사실 아무것도 없다. "인생 뭐 있어? 한번 사는 인생 신나게 노는거지. " 이런 마인드로 사는 사람들이 어찌보면 가장 편하고 즐거운 사람들이다. 닭목아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인생 변화의 원리를 깨닫든 말든 인생은 그렇게 늙음과 죽음을 향해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을 타고 자동으로 흘러가는 조각배일 뿐이다.

 

사실 이따위 생각들은 누구나 사춘기 시절에 또는 청년 시절에 한번쯤 다 머리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보기 마련이다.

오히려 나이들어서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한다는게 더 인생의 아까운 시간들을 축내는 멍청한 짓이다.

사춘기에 그만큼 인생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생각해본 걸로 족하다.

거역할 수 없는 인생 변화의 물결 위에서 인생이라는 배 안에서 아무리 벌버둥치고 아우성쳐봐야 인생 항해의 물결은 거스를 수가 없다.

 

내가 탄 인생이라는 조각배의 최종목적지는 명백히 죽음이다. 단지 그 최종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만이 남아있는 인생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최종목적지를 향하는 물결을 정반대로 거슬러 가는 방법은 없다.

다만 좌로 우로 조금씩 방향을 조정하면서 중간 경유지를 얼마나 잘 찾아서 먹을것과 휴식을 얻느냐 아니면 계속 쫄쫄 굶으면서 최종목적지로 흘러가느냐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처음 배가 출발할때는 한배 두배 세배 주변에 수많은 배들이 같이 출발하지만 인생의 중반문턱을 넘어가면 갑자기 그 많던 동료 배들이 시야에서 모두 사라지고 나혼자만 남은 조각배 속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순간을 경험한다.

 

인생이란 원래 그렇게 외로운 것이다. 어지간히 남보다 뛰어난 능력이 없다면 인생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남보다 뛰어나긴 커녕 남보다 잘하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외로움을 넘어서 가난의 고통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것이 무섭다. 배우자와 아이가 있는 가장의 인생 무게나 독거중년으로 늙어가는 1인가구나 인생의 무게는 대동소이하게 무거워진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순간 또 갑자기 폭삭 늙은 노인이 되어버린 것을 자각하겠지...

 

그때가 되면 아마도 죽음이 근처에 왔음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 대기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 이것이 조물주가 인간을 만드는 원리가 아닌가 싶다.

 

인생의 시간들이 한번 가면 두번 다시 오지 않는 다는 걸 깨닫게 함으로써 인생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짐승처럼 본능에 의존해 사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를 스스로 생각하게 만듦으로터 조물주는 어떤 쾌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 조물주란 다름 아닌 시간이다.  1년 1달 1일 1시간 1분 1초 0.1 초 0.00000000000....1초  그 어느 시간에도 조물주는

항상 그 곳에 있어 인간을 지켜보며 자신이 만들어 놓은 피조물의 희노애락을 팝콘을 먹으며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드라마 보기를 좋아한다. 조물주의 팝콘각 드라마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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